(책 증정 이벤트) 적대적 건축이 도대체 뭔데?
안녕하세요. 턱괴는여자들입니다.
어느새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래도 4년마다 생기는 보너스 데이, 윤달의 29일이에요. 무엇보다 봄의 초입을 향하는 것 같다가도 하루 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새침하게 눈을 뿌리는 변덕스런 날씨가 이맘때 즈음임을 환기시켜주는 것 같아요. 턱괴는여자들의 2024년 첫 두 달은 참 바빴고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어요. 두 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합니다.
<플랜75> 시사회 리뷰를 다뤘던 2월 첫 번째 턱괴는레터의 타이틀은 "ㅇㅇ님의 75세엔, 죽음을 기원합니다🎂🥳" 였어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면서도 누구나 충분히 이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해서 고안한 제목이었죠. 즉, 영화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2040세대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턱괴는여자들의 콘텐츠를 봐주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하다는 중요한 지점을 놓쳤습니다. 오히려 노년 혹은 75세가 나의 이야기라고 실감하는 분들에게는 사려깊지 못한 제목이었거든요.
뉴스레터 발행 다음날, 저희의 불찰이 더욱 부끄러울 정도로 배려와 존중이 가득 담긴 피드백을 받았고 바로 내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생각이 짧았다고 느껴 마음이 무겁습니다. 연령대를 막론하고 해당 제목이 불편하셨을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리며, 앞으로 보다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 않고 정진하는 턱괴는여자들이 되겠습니다.
위의 일을 양분으로 삼아, 유효한 질문과 관점이 담긴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이 회사의 본질이라고 새삼 느낍니다. 턱괴는여자들은 '출판'을 목표로 작년 말부터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바로 '외로움'의 사회 구조적인 역학을 톺아보는 것입니다. 하나의 새로운 주제라기보다, 턱괴는여자들의 기본적인 관점과 방법론을 제대로 소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어요. 이번 책을 통해, 첫 번째 주제였던 '마운드'와 '외로움'의 관계도 더욱 명료하게 읽어내실 수 있을겁니다.
책에는 사진전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 내용을 포함해 리서치와 다수의 기고글이 실릴 예정이에요. 레퍼런스를 찾기 힘든 구성이자 정체성인지라, 처음부터 이번 출판물의 편집은 전문가님께 맡기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테랑 편집자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출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님과 같은 책을 손에 쥐기까지, 그 설레이고 즐겁고 분명히 분투가 함께할 날들을 틈틈이 공유할게요.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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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이 리서치 중 발견한 주옥같은 레퍼런스를 공유합니다.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 책 증정 이벤트도 진행하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책의 저자 '사라 헨드렌'은 기술과 장애의 연결성, 사회적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디자인 연구자이자 예술가, 작가,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자신을 '기술 분야의 휴머니스트'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시시때때로 세상과 불화하는 우리의 몸을 주목하며, 디자이너가 왜 평균이 아닌 극단적 사용자를 살펴야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재설계 할 수 있는지 주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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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 인간의 몸이든 초인적 존재, 즉 신과 영웅들이 가진 완벽한 몸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 통계학의 등장으로 비교의 대상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하고 추상적인 존재에서 주변 사람으로 바뀌었고, 다른 사람을 상대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정상성'을 판단하는 비교 분석이 시작되었다. [...] 평균에 문화적 가치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공통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 옳은 것으로 보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25-27p]"
건물의 계단, 부엌의 싱크대 높이, 지하철 승강장 같은 장애물들은 모두 '정상적인 표준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과연 '정상적인 몸'이란 무엇일까요? 신과 대비되는 개개인의 불완전한 몸이 있을 뿐이었던 19세기 이전과 달리, 이제 인간의 몸에도 확률통계의 기준으로 '완전함'을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지요. 모순적인 건, 여기서 말하는 '완전'은 상위 극단의 것이 아닌 '평균에 속함'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평균'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1940년대 미국 공군 비행 훈련에서 충돌 사고가 빈번해지자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원인은 다름아닌 '평균적인 병사의 몸에 맞춰 제작된 조종석'이었습니다. 4천 여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한 결과, 기준이 되는 열 개 항목에서 모두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이후 기존 치수 대비 5~95%까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부품 규정을 해법으로 도입합니다. 사실상 표준이 무용한 가변범위이죠.
우리는 스스로가 '평균을 위해 지어진 세계'에 완벽하게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에 걸쳐 추가적인 기술이나 보조, 도움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요. 하지만,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5%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엔 '일반적인 노화'가 포함된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있는 몸'을 위해 마련된 보조 시설과 기구들은, 노년이 함께 향유하고 있으니까요. 지하철 승강장의 엘레베이터, (전동) 휠체어 등등. '장애있는 몸'이 향유할 수 없는 세상은, 우리 대부분의 노년이 향유하기 매우 어려운 세상이기도 합니다.
결국 어휘 그대로의 '장애'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을 견지하며, 사라 헨드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이 책에 나오는 장애와 디자인에 있어서 우리는 실재하며 보다 근원적이다. 우리의 몸이 모두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모두에게 닥칠 부적합 상태로 인해 삶에 찾아올 위험 부담을 보편적으로 공유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언젠가는 보조가 필요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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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 확인했다면, '장애있는 몸'에 대한 편견으로 따라오는 '자립'과 '보조'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라 헨드렌은 자신 만의 도구를 개발하고 일상을 보완하며 영위하는 몸들을 소개합니다. 거창한 기술이 접목된 것이 아닌, 부드러운 끈과 펠트 천 등의 재료들을 그저 색다르게 연결하고 디자인한 것이었죠.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운 '보조'의 공급은 '도구 없이 자립하는 신체'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독립성'의 척박한 기준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현재 임상 환경에서 장애인을 환자로 취급하는 기준 역시 '신체적 자립'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소개된 도구를 사용하는 몸들은 '독립성'을 '자기 결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애의 보편성을 감안할 때, 행위 보조는 부족한 사람의 필요가 아닌 선택적 권리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죠.
"의존성에서 보조를 분리하면, 또는 보조를 독립성의 개념에 포함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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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된 미 공군 조종석의 예시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의례 적합 범주에 들어간다고 오인했던- 수많은 부적합 신체가 존재합니다. '평균'이 결코 19세기 이전에 우리가 선망했던 절대적인 신의 몸에 대응할 수 없는만큼 우리에게 각자의 의미로 부적합한 이 조종석, 활동 무대는 재조명되어야 하죠.
사라 헨드렌은 "부적합 상태에는 예술과 기술과 디자인이 필요하다. [35p]"고 견인합니다. 덧붙여, 의도적•기능적 변형에 따라 '서비스 디자인', '적응형 건축', '선행 디자인'등으로 불리는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덧붙여 설명합니다. 새롭게 디자인되는 테크놀로지, 도구, 기구가 하는 일이 '보조'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지 물으면서 말이죠.
"디자이너는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즉 종형 곡선상의 중간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곡선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른바 극단적 사용자를 살폈을 때 더 강한 영감을 얻는다. [117p]"
"질문하는 디자인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물건을 만든다. [268p]"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을 읽고 난 후에,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에서, 주말의 한강 혹은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에서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세상은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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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김영사 X 턱괴녀 : 책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증정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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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괴는여자들 인스타그램에서 해당 이미지가 담긴 피드를 스토리로 공유해주세요.
- 스토리에 턱괴는여자들(@tuck_on_hand) 태그는 필수!
- 3월 9일(토) 총 5분을 추첨하여 사라 헨드렌의 책을 보내드립니다.
🗓️ 이벤트 기간 : 3월 1일 ~ 3일 8시
💭 당첨자는 턱괴는여자들 스토리로 공지되며, 개인 디엠을 통해 연락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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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차별은 디자인된 것이다 (2024.02.26, 일다)> 함께 읽기 [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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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공부하고, 뉴욕 기반으로 공공장소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영리 단체 '스트립 랩(Street Lab)'에서 일하는 필자 '한승아'님의 이야기.
'스트릿 랩'은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팝업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체라고 해요. 도시 디자인에 의해 안전과 문화 자본 역시 차별적으로 분배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고, 긴 시간과 복잡한 행정 절차가 요구되는 영구적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팝업 형태로 공공 프로그램을 조직합니다. 이를 통해, 공공장소의 '장소성'이 재평가되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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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를 기준으로 진행된 '움직이는 도서관' 프로젝트 (사진 출처 : 스트릿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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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 대한 관심은 공공디자인으로 이어지고, 필자는 도심 속에 존재하는 사용자를 제한하는 불친절한 디자인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부조리한 시스템은 주류집단 위주의 디자인에서 탄생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이 모든 것이 레드라이닝(redlining)의 역사다. 레드라이닝은 도시설계를 할 때 의도적으로 특정 집단 (뉴욕의 경우 흑인과 이민자들)을 소외시키며 디자인 한 것이다. 레드라이닝의 결과는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주거환경, 건강, 교육, 경제활동 등 모든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사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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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최근 등장한 '리닝 바'는 서울 도심 버스정류장에서도 흔히 보이는 디자인이다. (사진 출처 : NYC D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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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디자인은 차별의 '도구'이며, 그 기저의 '원인'을 없애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개개인의 자각과 논의, 감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사라 헨드렌이 던졌던 질문이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지어진 세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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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가 적대적 건축에 유머로 대처하는 법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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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건축을 해학으로 승화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Sarah Ross는 적대적 건축을 무용화 시키는 'Archisuit' 시리즈를 제작해, 역으로 공공시설들이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칸막이 손잡이를 피해 앉았던 벤치가 '어떤 행위'를 막고 있었는지, 그 주체는 누구일지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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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suits (2005-2006) (사진 출처 : Sarah Ro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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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년 LA 도심에서 진행된 'Archisuit' 프로젝트는, 적대적 구조물을 위해 제작된 4가지 조깅 수트 에디션입니다. 작가는 '인종, 계급, 성별에 따른 신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작동하는 건축'에 대해 지적합니다. 'Archisuit'는 그 위에서도 주체가 편안하고 여유롭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며, 그 '부적합한 존재의 적합화' 자체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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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suits (2005-2006) (사진 출처 : Sarah Ro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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