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지즈코 #돌봄 #젠더 #사회학 #리서치 #책 안녕하세요 님. 턱괴는여자들입니다.
일기예보가 변화무쌍한 7월이에요. 더위와 습기가 함께 높아 힘든 날씨죠? 그만큼 실내에선 에어컨 바람이 세니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 여러분 냉방병과 감기 모두 조심하세요. ☀️❄️🧊
저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5일 간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모든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 요즘 턱괴는여자들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 때문인지, 도서전을 둘러보시는 노년 즈음의 관람객분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은퇴한 노년의 장소에 대해 틈틈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돌봄'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들어와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주는 콘텐츠들을 소개할게요. 생각보다 일상적인 '돌봄'에 대해, 생각지도 못하게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지점들이 많을거예요!
🌿 7월 첫번째 레터에서는- '돌봄'을 둘러싼 '사회학'적 질문들을 다뤄요.
- 우리는 왜 죽음보다 늙음을 두려워할까
저속노화 흥행 너머에는 '급속사망'에 대한 바람이 있다
- 우에노 지즈코 『돌봄의 사회학』
(1) 돌봄의 '당사자'란 누구인가 (2) 가족돌봄은 당연할까 (3) 돌봄노동의 젠더 편향
- EBS <다큐 프라임 :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집에서 죽겠다는 선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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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제 내가 나이든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감각이요. 이 깨달음과는 별개로 요즘은 은퇴 후에도 부모님들께서 건강하시다 보니, '돌봄'이라는 주제는 어쩐지 와 닿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에게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돌봄'은 따로 있었어요. 최근 트위터를 시작으로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저속노화' 트렌드를 혹시 아시나요? 돌봄과 저속노화가 과연 어떤 상관관계일지, 함께 봐요!
'저속노화'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저속노화식단 제안에서 시작되었고, 트위터에서 빠르게 퍼져나가며 화제가 되었어요. 최근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MZ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사실은 빠르게 노화하고 있다는 일명 '가속노화'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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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MZ 트렌드 '저속노화' 식단 (헤드라인 출처:서울경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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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젊은층이 '저속노화'에 주목하는 이유를 조금만 더 파헤쳐볼까요? 앞서 미국에서는 Z세대의 건강 주의가 조명된 적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내일없이 즐기고 놀 나이인데, 밤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저녁 술자리 약속을 피하는 등의 건강한 생활 패턴이 유행하고 있거든요. 그곳에도 '저속노화'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명칭은 조금 달랐어요. 바로 '급속사망'이라는 이름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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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저속노화 선생(정희원 교수)이 있다면, 미국엔 급속사망 선생이 있다"
국내 트위터에서 '미국 급속사망 선생'이라고 불리는 피터 아티아 박사
화제에 힘입어 최근 그의 저서 『질병 해방』이 정식으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2024.04, 부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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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와 '급속사망'은 사실 동일한 이론입니다. 핵심은 신체 노화가 가능한 느리게 찾아오게 해서 최대한 오랜시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마지막에 급속도로 사망한다는 것이죠. 피터 아티아 박사가 설명하는 위 사진의 빨간 그래프처럼요.
국내 트위터에서도 사실은 '급속사망'이라는 연계 키워드 덕분에 '저속노화'가 큰 공감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속노화'의 흥행 너머에는 젊은 세대들의 '유병장수' 기피, 즉 돌봄이 필요한 몸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바람이 강하게 깔려있었던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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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론이지만 '저속노화' 보다 '급속사망' 프레임이 더 마음을 끈다는 반응 (출처:트위터)
좋아요와 북마크 수에서도 알 수 있듯,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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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보편화된 젊은 세대에겐, 신체 노화와 '돌봄'이라는 주제가 나의 얘기가 될 때 더욱 막막해집니다. 부모님은 내가 돌볼 수 있지만, 미래에 나를 돌봐줄 자녀는 없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사실상 현재 한국 사회가 '돌봄'이라는 시대적 필요를 공공분야에서 잘 다루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출발하겠지요.
보편적으로 4인 이상의 가정을 이룬 현재의 노년세대도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일상적으로 목격합니다. 돌봄 시설의 시스템은 미비하고 입소자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가혹하지요. 1인 생존을 선택한 젊은 세대가 '돌봄'을 피해서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슬픈 최선일지도 몰라요.
내년이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지만, 아직까지도 근본적인 논의들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떤 질문들이 필요할까요? 님, 아래에서 함께 살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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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사회학』
2024.05.27
오월의 봄
지은이. 우에노 지즈코
옮긴이. 조승미, 이혜진, 공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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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입니다. 일본의 여성학계에 한 획을 그었고, 이제 노인 사회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연구자이기도 해요. 자신의 생애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연구주제를 확장하며 양쪽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저서들을 다수 집필했습니다.
그중 가장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 944페이지의 분량 안에 느슨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든 파트가 상호작용을 맺으며 탄탄하게 서로를 지탱하는 놀라운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한국에서도 큰 공감을 얻을만한 근본적인 질문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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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돌봄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 저자는 사회복지학에서 보통 어떠한 '니즈'를 판정하는 이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라는 점을 꼬집습니다. 그 이면에는 복지를 필요로 하는 주체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는 풍토와, 전문가가 무조건적인 선의를 가진 타자일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어요. 이는 굉장히 시혜적이고 온정주의적인 관점인데다,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의 배려가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환영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담겨 있죠.
우에노 지즈코는 돌봄을 '받는' 당사자의 니즈가 가장 1차적인 것이라고 못박습니다. 그 당위성이 돌봄 관계의 압도적인 비대칭성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요. 돌봄을 제공하는 쪽은 언제든 이 관계를 벗어날 수 있지만, 제공 받아야하는 쪽은 그럴 수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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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산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양로시설 시스템. 우리는 당사자의 니즈를 얼마나 우선시하고 있을까요?
(출처 : EBS <다큐프라임 :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1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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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 난립을 정리한 후에도 사회적 판단을 당사자의 니즈로 오인한 결과가 구조적으로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로시설이 감옥처럼 여겨지는 장소가 된 이유도 그래요. 다인실에 노인을 '수용'하는 체계는 '당사자의 니즈'가 아니지요. 현재는 많은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진 일본도 과거엔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1991년 북유럽 양로시설의 사례를 관찰한 저널리스트 오쿠마 유키코는 『누워만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일본의 고령자가 시설에서 계속 누워만 있는 것은 누워서 지내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왠지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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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는 자녀와의 세대결합을 이루고 돌봄을 받는 등, 일본의 노인들이 결론적으로 당사자 주체성을 잃는 선택을 하는 것도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자녀에 대한 책임을 느껴서라기 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집합이 한정되어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는 턱괴는여자들이 한결같이 견지하는 관점과도 일치해요. "보이는만큼 존재"하고 꿈을 꾸기에,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있어야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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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가족 돌봄은 당연할까?
"오늘날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상 역사가 짧은 사회현상이며 근대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만들어진 전통'이다." -에릭 홉스봄-
- 우에노 지즈코는 가족이 고령자를 돌보는 전통 또한 역사가 짧은 현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령자라는 인구학적 존재 자체가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에요. 과거 인구학적으로 부모와 자식 세대가 동거할 확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부모 세대의 평균 수명이 짧았고, 반면 평균 출생아 수는 많았으며, 그중 장남에게만 부모의 재산을 상속하는 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장남이 부모 집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거든요. 자녀 입장에서, 특히나 장남이 아니라면 부모를 모시는 일이 흔치 않았던 셈입니다.
- 하지만 이후에 모두가 장남 아니면 장녀가 되는 저출생 세대가 등장하면서, 부양 확률은 압도적으로 높아졌습니다. 동시에 고령자 문제가 정책 과제로 부상했고요.
일본은 그 대책으로 1932년 '구호법'을 시행해 고령자들을 시설에 수용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대상자는 약 3만 명이었던 데에 반해 시설에서 수용 가능 인원은 2,000명에 불과했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시설에 들어간 노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요. 복지에 대한 낙인이 찍히자, 시설 돌봄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퍼져나갔고요. 이는 지금의 한국과 매우 비슷하게 보입니다. 한국의 양로시설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전체 고령자 인구의 0.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우선순위가 있다 보니 차별적 시선이 형성되었고, 민간 시설 입소도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공공연해졌지요.
- 저자는 이러한 흐름이 일본에서 가족의 고령자 돌봄을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합니다. '구호법'에 뒤따라온 정책들도 공공 복지의 대상을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 고령자'로 제한하면서, 가족 돌봄이 당연한 자원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기 시작했고요.
- 우에노 지즈코가 가족 돌봄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를 짚고 넘어가려는 이유는, 가족 돌봄이 '당사자'에게도 과연 좋은 선택일지에 대한 논의가 묻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관련 분야 연구자 가스가 기스요의 말을 빌려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가족 돌봄의 수준은 정말 높은가? 가족의 애정은 돌봄의 질을 보장하는가? 고령자는 가족에게 드러내놓고 불만을 말하거나 요구를 할 수 있는가?" 연구자 가스가는 시설에서 돌봄을 받는 고령자가 오히려 확실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가족 돌봄을 받는 고령자들은 자신의 작은 표현도 불만을 표하는 것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말하는 것 자체를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또한 가족 돌봄의 대부분은 자녀가 부모를 불러들이는 형태라는 점에서, 새로운 거주지와 가족 분위기에 적응하는 짐을 지는 것은 대개 부모 세대입니다. 이 때문에 가족 돌봄 고령자의 행복도가 다소 낮은 편이라고 하네요. 만약 가족이나 시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만큼 사회적 인프라와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면, 여러분은 노년에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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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사자의 성향과 상호관계에 따라 최선의 방법은 모두 다를겁니다.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오늘날의 복지국가는 '가족'이 완충지대로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로 깔고 정책을 고안한다는 점이에요. 아직도 시설에서는 '가족이 돌보는 것과 같은 돌봄' 등을 선전 문구로 사용합니다. 사회적 돌봄 자원이 스스로를 '차선책'이라고 자인하는 셈이죠. 공적 복지가 선두가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사회에서, 우리 노년의 선택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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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돌봄노동의 젠더 편향
- 앞서 언급된 가족 돌봄이 정책적으로 일본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입니다. 특히 1978년도 정부 문서에는 가족 돌봄이 "사회복지의 자산"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저자는 이 시기의 일본 정부가 가족의 부불 노동을 이용해 선진국과 대비되는 저비용의 일본형 복지를 구상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부가 당연하게 여긴 '부불 노동'의 주체는 누구였을까요?
- 비슷한 시기 한 대학의 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의 개호(돌봄) 자원 지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도는 다름 아닌 일본의 40대 무직 기혼 여성 비율을 나타낸 자료였습니다. 전업주부라면 누구나 돌봄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당시 "고령자와 같이 사는 며느리는 헬퍼 3명에 상당한다"라는 논리가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고 하니, 꽤 높은 가치의 부불노동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풍토는 1972년 발표된 아리요시 사와코의 베스트셀러 소설 『황홀한 사람』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의 현실과 며느리의 간병 부담을 생생하게 그리며 사회 문제로서 고발하고 있는데요. 극 중 주인공인 며느리 아키코가 노인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듣는 말에는 당시의 시대적 가치관이 적나라게 담겨있습니다. "노인이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죠. 가정주부가 정신 바짝 차리고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 과연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2002년 후생노동성 <국민생활기초조사>에 따르면, 고령자를 돌보는 가족을 분류해본 결과, 며느리(22.1%) > 아내(17.6%) > 딸(12.%) 순으로, 여성이 나란히 1~3 순위를 차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봄 노동자를 '성별'로 통계낸 자료는 최근에서야 부록에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 저자는 고령자 돌봄과 젠더에 대한 연구로 영국의 언거슨의 저서 『Policy is Personal(정책은 개인적인 것이다)』의 관점을 참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돌봄에 주로 여성이 투입되는 것은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언거슨은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에도 사회 규범이나 사회제도, 사회자원 등의 요소가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고 교육받은 여성이 돌봄 노동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돌보는 성'으로서 여성을 규정한 사회적 규범이 '죄책감'과 같은 여성의 내적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만이, 여성의 부불노동에 대한 연구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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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여성의 돌봄이 왜 스스로에게도 자각되지 않은 강제 노동일 수 있는지에 대해 학술적인 자료를 더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간략하게 나열하면 다음과 같음 (1) 해당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지위 (2) 한 세대 내 자원 (3) 여성의 생애주기 (4) '돌보는 성'으로서의 여성 (5) 친족 간 우선순위를 정하는 가족 규범) 특히, 돌봄 노동이 여성의 노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평가절하 되는 맥락도 상세히 살펴볼 수 있어요. 책에 담긴 '여성의 돌봄'에 대한 데이터는 종횡으로 전례없이 방대합니다. 우리는 데이터 없이는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돌봄은 젠더와 분리되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돌봄의 사회학』은 사회학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의 실마리를 잡아볼 수 있는 책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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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페이지에 달하는 연구를 통해, 저자가 최종적으로 제안하는 대안은 '복지다원사회'입니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 가족이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전히 숙제는 많습니다.
비가족적인 돌봄 체계 마련을 위한 대안이 궁금하다면? 젠더 편향을 뛰어넘어야 하는 돌봄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돌봄의 사회학』을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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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EBS에서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3부작 <다큐프라임 :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가 방송되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노년과 죽음의 질(quality)'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예요.
그중 2편인 '집에서 죽겠습니다'에는 『돌봄의 사회학』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생애주기를 따라 새로운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연구주제를 확장한 그가, 일본 사회에 어떤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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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결국 노후나 간병에 관심이 가죠. 저도 이런 흐름대로 변해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한테 가장 절실한 주제를 따라온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우에노 지즈코. (출처:EBS유튜브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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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에서 우에노 지즈코는 노인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돌봄의 사회학』에서 '당사자'의 '니즈'에 대한 정의를 주요하게 다뤘던 맥락과 닿아있는 부분이지요.
특히 일본의 노인들이 '집에서 죽는 것'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미디어에서 '고독사'를 비추는 방식과 용어에 담긴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미지 레퍼런스의 문제라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보았어요.
"'고독사'에서 '고독'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고독사는 사후 몇 주, 몇 개월이 지나서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비참한 사례들 뿐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고 싶어요. 그래서 '1인 재택사'라고 부르자는 겁니다." -우에노 지즈코-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에서는 노인들이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 일본의 정책적 배경, 부모 세대 돌봄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다양한 관점, 일본 노인 정책의 새로운 과제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자신의 돌봄 경험에 대해서 인터뷰하거나 우에노 지즈코의 강연을 들으러 온 이들은 여전히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도 눈에 띄네요.💭
"우리 사회 노인들이 안심하고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면, 우리도 같은 죽음을 맞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우에노 지즈코. 그가 말하는 노인 사회학을 빠르게 살펴보고 싶다면, 다큐 시청을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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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괴녀 근황] 펀딩 성공적 종료! '외로움/끊기/성공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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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에서 진행된 신간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의 펀딩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총 178명의 동료를 얻어, 외로움을 파헤치는 여정이 외롭지 않게 되었어요. 이제 한 분 한 분께 보내드릴 소중한 택배를 준비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행사들과 온라인 서점 입고 소식을 계속해서 전할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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