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인류에 대하여 <담는 방>에서 쓰인 '우리의 글'로 끝맺는 «아마도, 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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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 우리는 인문학과 공감능력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변화가 필요한 것을 찾고, 바꾸기 위해 리서치하는 연구자들입니다.
✽ 우리는 그 리서치 자료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사업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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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포함한 우리, '읽고 쓰는 인류'
- 캐롤 슈디악 사진전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는 <블라인드 에세이>를 통해 먼저 소개되었어. 메인 포스터에도 사진이 아닌 작가 노트에서 발췌한 문장이 있고. 왜 사진전에 '글'이라는 매체가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 우리는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의 관람객들은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신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읽고 쓰는 인류'라고 상정했어. 이타적인 관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교차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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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6일, 전시를 '보고 읽은' 이들 중 6명이 에세이 쓰기 워크숍 <담는 방>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어. 이번엔 직접 '써보기' 위해서! 에세이 쓰기를 도와줄 글쓰기 선배로는 <블라인드 에세이>의 포문을 열었던 박초롱 작가님이 함께했지.
- 베타니아 주민들이 보여준 1.52평의 우주처럼, <담는 방>의 참여자들도 완벽한 타인인 서로에게 각자의 방문을 열어주었어. 네 명이 흔쾌히 턱괴는레터에 글을 나누기로 했는데, 함께 볼래?
※ <블라인드 에세이>와 «아마도, 여기»의 방법론을 따라, '글 - 사진'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소개는 '가나다'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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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일상의 시도
이윤지
방문을 연다. 방을 둘러보니 치우지 않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3가지 물건이라…… 진짜를 보여줘야 할지 꾸며진 것을 보여줘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단정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타인에게든 나 자신에게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깨끗한 공간을 찾는다. 하얀 책상 위 한쪽 끄트머리. 뒤죽박죽 쌓여 있는 옷과 약, 책들을 한쪽으로 미뤄두고 지난 주 배송된 책들을 쌓는다. 아마도 이 책을 다 읽으려면 한 달은 걸리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휴식이 필요할 때, 불안이 엄습할 때 언제고 아무책이나 꺼내들면 된다. 앞선 선배들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의 한 문장에 기대어 나 역시 한 단어, 한 문장, 글 한 편을 잘 쓸 수 있을테니.
책들 사이에 낀 연고가 보인다. 중간이 쪼그라든 것을 보니 거의 다 써간다. 비싼 건데 마구 썼나. 아니지, 흉터 관리는 첫 한 달이 중요하다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신신당부했다.
그러고보니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 올 가을, 일 년 내내 나를 고생시킨 종양으로 결국 배를 열었다. 개복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내 몸에 무신경한 죄로 가장 까다로운 수술을 받게 됐다.
5시간 수술, 일주일의 입원, 한 달의 회복기. 씩씩하게 수술 받고 무탈하게 회복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동안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바로 연고 효능서의 한 글귀였다.
“이 연고로 흉터가 결코 지지워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흉터를 예쁘게 가꾸어주어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20cm의 흉터는 결코 말끔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젠 이 흉터 역시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 역시 달라야 한다.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 엉망이 된 자리들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느 일상처럼 내일은 사무실 화병의 꽃들을 정리해주기로 계획했다. 생기와 물기는 사라졌지만 부서서지지 않는 꽃들처럼 나의 흉터, 나의 일상은 다시금 단정해질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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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선님
2023년 1월, 한 해를 시작하는 달. 그 달의 내 생일 선물은 흑단나무로 만든 잉크펜이었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내는 사람의 손에서 가장 행복해한다던가. 방에서 가장 눈에 띄고 의미 있는 오브제 사진을 요청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먼저 눈이 가 첫 번째 오브제로 선택했다.
나는 올 한 해 스스로에게 용기를 낸 사람이었을까. 아무리 바빠도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은 절대 놓치지 말라던 친구의 편지처럼 한 해를 나를 위해 충실히 살았을까.
3개월 전 숨 가쁘게 달렸던 회사를 나와 드디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생각했건만, 나는 또다시 바쁜 일 속에 날들을 바쳤다. 그러다 12월의 오늘. 1월에 받은 흑단나무 잉크펜을 보며 2023년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서 끊임없이 회피했던 걸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푹 빠져서 스스로를 던져두고 있노라면 꽤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을 당연히 모르겠고, 오늘은 불확실하고, 어제는 이미 지나가버린 날들. 당장 닥친 일들이나 겨우 쳐내는 날 속에서 허우적대는 주제에 단단히 두 발로 중심을 잡고 나를 생각하는 일은 영 불편한 일이었다.
늘 회피하며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를 내지는 못했으니 2023년 내 손안에 흑단나무는 썩 행복해하지는 못했겠구나 싶다. 앞으로 주어진 날들을 어떻게 보낼지 여전히 불확실 하지만 먼 미래에 아주 많은 주름과 함께한 나의 방 안에 흑단나무 잉크펜을 꼭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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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휘
누구에게나 애장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 누군가는 푸른색의 식물이 가득한 화분을 또 누군가는 오래 전부터 곁을 지켜온 오래된 곰 인형을. 그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하기에 그 물건에 담긴 사연들도 다양하다. 그 사람의 손길과 체취가 가득 묻어있을 그만의 애장품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 떠나보내기 어렵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시작하면서 들여오기 시작한 여러 언어의 타자기들과 배우 심형탁님의 최애 캐릭터가 고양이형 로봇인 도라에몽이듯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에 곁을 지키며 위로해 준 만화 캐릭터인 마이멜로디와 쿠로미 장난감. 그리고 홈베이킹이라는 취미로 만들어져 방 안을 달달함으로 가득 채워주는 여러 가지 쿠키들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들이라 하여도 모자람이 없기에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혹여나 이 가운데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하게 된다면 내 몸 어느 한 부위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아린 기분이 들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나의 감정은 애정 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자신의 애장품은 자신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애장품이 점차 많아질수록 이러한 물건들이 내 곁에 오기까지 어떠한 감정의 과정들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래전부터 원하고 갈구하던 감정보다는 무의식 혹은 순간의 느낌 가운데에 노출된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발현했던 것 같다. 타자기만 해도 그렇다.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던 난 길을 물을 겸 우연히 레트로한 느낌이 가득했던 카페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곳의 창문 아래에는 괘지가 걸린 민트색 한글 타자기 한 대가 놓여져 있었는데 길을 잃어 심란했던 중에도 창을 뚫고 찾아온 햇살을 맞이하던 그 타자기가 왜 그렇게 예뻐 보였는지 모른다. 괘지에 글자가 하나씩 음각으로 새겨질 때 마다 들려오던 중후하고도 경쾌한 타건소리는 또 왜 그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던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하게 전해졌던 느낌이 카페를 나오고도 마음속 깊이 남아 마침내 한글과 알파벳과 키릴문자를 새길 수 있는 타자기를 하나씩 데려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들여온 타자기로 나의 감성을 담은 글과 시를 종이에 새기며 스스로를 다독이다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아늑함을 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무의식 속에 찾아온 그러한 감정은 내 공간을 조금씩 채워갔고 주변의 일상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좋아하는 대상을 파고든다는 뜻을 가진 덕질이라는 신조어가 나에게는 타자기에 대한 덕질로 캐릭터에 대한 덕질로 쿠키에 대한 덕질로 이어지게 된 만큼 내일 그리고 또 다른 내일에는 어떤 덕질을 하게 될까?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애장품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예상할 수 없기에 궁금증이 커져가지만 구태여 짐작하기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순간의 느낌으로 발현된 그 때의 그 마음으로 다시금 무언가를 들여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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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불행 만들기
지구(필명)님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곳을 관이라고 생각했다.
좁고 긴 고시원에 살았어서. 복도식 건물은 사람들 발소리가 울려 날 불안하게 했다. 밤이면 누군가 날 쳐다보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 올 것 같아 불안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했고 그래서 불행했고 더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 몫의 불행이 이게 끝일 리 없다 생각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를 짓눌렀다. 좁은 고시원 벽이 울렁거리며 나를 누르는 듯해 벽에 손을 얹고 잤다. 벽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밤새 확인하려고. 내 불안은 머릿속에서 공포를 먹고 상상을 양분 삼아 자라났다. 나는 여름에 물을 조심하라는 점괘를 받은 사람처럼 모든 걸 두려워했다.
그러다 선물을 받았다.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 포스터. 정면을 아주 강렬하게 쳐다보는 그 포스터는 달마도 같기도 했다. 어른들이 잡귀를 물리치고 재앙을 쫓아버리려고 집에 걸어두는 그 달마도. 부릅뜬 눈, 덥수룩한 수염, 강렬한 눈빛을 가진 부적. 나의 프리다 칼로 포스터로 치자면 부릅뜬 눈, 무성한 눈썹, 강렬한 눈빛. 매일 밤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 잠 못 이룰 바에는 차라리 먼저 선수 쳐버리자 라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기왕 누가 밤새 쳐다볼 거라면 좋아하는 화가가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귀신도 그와의 기세 싸움에서 쉽게 이기지 못할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그 포스터를 침대 맞은편 책장에 올려두었다. 돌아누우면 바로 볼 수 있게.
그리고 그 밤, 또 공포에 눈을 떴을 때 희미한 불빛 사이로 프리다 칼로와 눈이 마주쳤다. 두려워하던 공포가 마침내 찾아왔을 때의 안도감이란. 드디어 나의 불행이 내게 왔구나. 아니 내가 찾았다.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에 불행해하던 나에게 다시없을 기쁨이었다. 이사한 지금도 침대 옆 책장에는 프리다 칼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게 통제 밖을 벗어나 불안할 때, 그래서 불행할 때 이제 나는 잠시 괴로워하고 내 몫의 불행을 찾으려 한다. 그가 내게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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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는 방 : 에세이 쓰기>
일시 ㅣ 2023.12.16 (토) 13:00-14:30
장소 ㅣ 도만사(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 ㅣ 턱괴는여자들
진행 ㅣ 박초롱 작가님, 턱괴는여자들 송근영
후원 ㅣ 소소문구
사진 ㅣ ©도만사, ©턱괴는여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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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2길 19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 P 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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