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되 행복하게, 박제언 님 인터뷰 💌 2023년 8월 턱괴는레터
본업, 육아, 사이드프로젝트 다하는 방법
치열하되, 충분히 행복한 박제언 큐레이터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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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 우리는 인문학과 공감능력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변화가 필요한 것을 찾고, 바꾸기 위해 리서치하는 연구자들입니다.
🙋🏿 우리는 그 리서치 자료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사업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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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언 큐레이터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N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기획했던 전시를 쫓아 인스타그램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치열하되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었죠. 어라? 그런데, 아이가 있었어요. 육아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잘 해내고 있었고요. 어어? 그런데, 사이드프로젝트까지 하다니! 육아와 직장 생활, 사이드프로젝트까지. 어떻게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낼 수 있는 거지? 마치 저글링처럼 묘기를 부리듯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동경해오다 마침내 용기를 내봤어요.
"혹시 인터뷰 가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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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녀 with 턱괴녀
🦄박제언 큐레이터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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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2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한번 말씀해주세요 DDP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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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언 님의 커리어 패스 Career Path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술 학교 진학을 준비해 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모두 입시를 치렀어요. 이때부터 치열하게 사는 게 조금 습관처럼 되었던 것 같네요.
학부에서 조소과와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이후로 2011년부터 아트센터 나비라는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네요. 당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학예팀 선생님들과 함께 정말 두꺼운 원서를 읽고, 발제하고, 의견을 나누는 스터디 활동까지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러면서 미디어아트에 더 깊은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일을 계속하려면 공부 정말 많이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죠. 힘들었지만,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트센터 나비를 나와서는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미술사를 더 깊이 공부했고요. 그렇지만, 프로젝트 단위로 여전히 일을 놓지 않았죠. 석사를 마치고 바로 조직 안에서 다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석사 중에 결혼하고, 임신도 했어요. 그때는 건강과 아이를 돌보는 게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잠시 보류하고, 대신 사이드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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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도타비 Dotavi’ 인가요?
➡️ 맞아요.
💬 이건 다음 질문에서 좀 더 자세히 들어볼게요.
(사진) 2019 나의이야기를 들어줘 전시오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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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타비로 활동하던 중 지인에게 마침 사비나 미술관에서 사람을 구하니 지원해보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어요. 이곳에서도 미디어아트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주3회 출근이 가능했거든요. 그래서 육아와 병행할 수 있었죠. 물론 그때는 아이가 정말 어렸어서, 미술관 실장님의 많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정부지원 사업을 운용하는 방법이나, 미술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전시가 어떻게 기획・운영되는지 등 전시의 기본을 경험하고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라는 곳에서 제안이 왔어요. 이번에는 학예팀장으로서 팀을 리딩하는 역할이었죠. 당장 이직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한동안 2개의 기관을 동시에 다녔어요.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일단 내가 잘하고, 선배들을 거의 우러러보며 배웠잖아요. 그다음 스탭에서는 프로젝트 하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보고요. 그러다 플랫폼엘에서는 팀을 생각해야 하는 제가 된 거죠. 팀원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지원해주는 일을 처음 해봤어요. 참 의미있고 이것 자체로 배울 점이 많았죠. 또, 팀원들에게서 제가 놓치기 쉬웠던 트렌드가 무엇이고 동시대성은 무엇인지 등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때가 탑다운이 아닌 바텀업 방식의 업무 진행에 대해 처음 인식하고 고민했던 순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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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otavi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2019 기획 호림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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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궁금했던 건 학업과 육아, 육아와 직장생활도 대단한데, 여기에 완전히 자율적인 사이드프로젝트까지 하셨다는 점이에요. 제언님의 사이드프로젝트 ‘도타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 도타비는 미디어아트를 좋아하고, 이를 연구하며 기획하는 다원 예술 그룹이에요. 김세령 안무가, 이혜주 미디어 아티스트, 무아 비쥬얼 아티스트, 그리고 큐레이터인 저까지 4명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서울문화재단이나 아르코에 공모 신청을 해본다거나 그런 과정도 없이 정말, 아무 예산도 없이 시작했어요. 일단 팀을 조직하고, 기획안을 만들어 우리 프로젝트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기획안을 보내기 시작했죠.
프로라타아트 prorataart 라는 공간에서 첫전시인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So Please Listen And Just Hear Me>를 열 수 있었어요. 트레이시 에민의 <I wanted to go with you - to Another world> 작품과 연계한 전시로, 트레이시 에민의 회화 1점과, 도타비의 미디어아트 작품 2점, 강지영 작가의 미디어 작품 2점 총 5점의 작품등 여성 미디어아티스트들을 섭외하여 자기고백적인 작업들에서 오는 여성들의 공감을 보여주려 했어요. 이때 분할소유나 증강현실(AR) 기술을 도입했다는 게 특징이었어요.
그 후에도 현대자동차 zer01ne 퍼포먼스를 기획하거나, 실시간 증강현실 공연을 기획하는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다원예술 전시나 프로젝트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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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궁금한 점이 시각 예술이란 큰 줄기 아래, 미디어아트라는 작은 줄기를 다시 발견해서 그 흐름을 타고 활동하고 계세요. 제언 님이 생각하는 미디어아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사진) Dotavi Break∞Build 2019 기획 및 퍼포먼스
제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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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아트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디어아트를 정의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사실 이 용어 자체가 현재 여러 가지 의미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참 쉽지 않죠. 단순하게 제가 관심 두고 있는 ‘미디어아트’를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서 뉴미디어를 매체로 활용하고 있는 작업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를 통해 제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는 주로 탈중앙, 탈장르화, 이분법탈피와 같은 이야기인데요. 환경이나 여성을 주제로 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어져 오는 제 관심 주제입니다.
제가 어릴 적 경험한 예술계에는 아직 도제식 문화가 남아있었어요. 일찍 작업을 시작한 선생님은 언제나 선생님이시고 후발주자는 항상 후배에 머무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것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경직된 문화나 위계는 종종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놓치게 하죠. 그에 반해 뉴미디어-즉 새로운 기술은 누구에게나 처음이에요. 10년 전부터 나는 미디어 아티스트였다 해도, chat-GPT나 미드저니(text to imege 기반의 AI)는 모두에게 새로운 툴이고 시도이죠. 저절로 공기가 뒤바뀌는 느낌이에요. 그 때문에 저도 늘 미술계 소식 외에도 MIT Technology review 나 시그라프(siggraph) 등을 추적해야 하죠. 13년을 미디어아트를 좇아 온 저에게도 늘 모든 게 새로워요.
무조건 적인 위계의 전복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세상은 한 번씩 흔들리고 섞여야 오히려 정 방향으로 흐른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제가 미디어아트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기본적으로 기계음이나 사이킥한 멜로디, 수학적 사고방식이나 기계의 작동을 목격하는 것 자체도 무척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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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설득되네요. 우리에게 '일'도 있다면, 그 일을 제외한 '생활'이 있잖아요. 요즘 평소 생활은 어떤지, 어떤 인간으로 생활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어쩔 수 없이 계속 강조하는 게... 너무 오랜만에 쉬어봐요. 여전히 조금씩 일과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최근에 퇴사를 하면서 조직 밖으로 완전히 나온 상황이니까요.
💬 맞아요.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시고, 그냥 늘 2-3가지 일을 동시에 하셨잖아요.
➡️ 네, 그래서 요즘 생활은 정말 쉬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우선 아이와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려고 해요. 그냥 아이랑 같이 노는 거죠. 저도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얼마나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많은지 잘 알고 있어요. 아이가 그런 부분을 잘 따라주어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고요. 또 드라마와 웹툰을 많이 정주행해요. 최근에 <우리들의 블루스>, <멜로가 체질>을 봤어요. 아 게임도 많이 합니다.
💬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흔히 킬링 타임이라고도 하잖아요. 생산성을 위한 어떤 단계라기보단 그냥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위들이요.
➡️ 네 맞아요. 그렇게 그저 시간을 소비시켜요. 근데 그런 거 아시죠? 이런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소비하면서 대중적 감각에 대해 익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에서 ‘릴리트’라는 캐릭터를 통해 결국 선과 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분명 현대 미술에서도 선과 악에 대해 자주 말해요. 이 주제를 말하는 전시, 작가들이 있죠. 그런데 디아블로는 정말 사용자가 많잖아요. 그런 데서 아 이 메시지를 이 정도, 또는 이런 방식으로 말해야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구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구나. 그런 감각을 익힌다고 생각해요. 꼭 다수가 공감하는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감도인지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젤다의 전설>이라는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에서는 목표가 없어요. 물론 최종빌런은 존재하지만, 빌런을 깨거나 무찌르는 것 외에도 플레이할 수 있는 방식이 무수하게 있고, 백 명의 사용자가 백 가지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 게임을 하면서도 삶의 목표나 흐름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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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독립 큐레이터로 정체성이 변했어요. 조직에 속해있다가 나와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건 이미 꽤 자연스러운 루트이죠. 그래도 어떤 생각의 변화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의 변화를 거쳤는지, 또 요즘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사진) Korea Market Forum 2022 연구 및 집필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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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나는 날이에요. 비가 정말 많이 왔죠.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듣고 싶던 콘퍼런스가 있어서 그걸 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음료수 들고 가다가 넘어졌어요.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입원을 권고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2022년에 휴직을 하게 되었어요. 계속 누워만 있었어야 했어요. 그 와중에 직장에서 오픈하는 전시를 위해 꼭 써야 하는 전시 인트로 글이 있었는데, 타이핑은커녕 스스로 앉아 있기도 힘든 몸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가 입으로 말하면, 동생이 그걸 받아 적어서 글을 완성하기도 했죠.
💬 세상에
➡️ 네, 진짜 힘든 순간이었죠. 자기 생각을 머릿속에서만 말로 정리해서 읊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 너무 고생 많으셨겠어요.
➡️ 그래도 무사히 회복되었고, 다 낫고 나서 유럽에 가게 되었어요. 유럽에서 잠시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일도 잠깐 하고, 나머지는 놀았죠. 네덜란드 iii, 스위스의 Hek, 독일의 ZKM 등 유럽에 있는 미디어아트 기관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친해진 네덜란드의 박소윤 작가님과 함께 베라 반 드 사이프(Vera van de Seyp) 작가님을 초대하여 한국에 와서 DDP에서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전시도 기획했어요. AI를 이용해 시인의 시를 프롬프트(prompt) 삼아 제작된 문학, 음악, 미술의 형태를 띤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개했었죠.
또 유럽에 있을 때 줌으로 회의하다가 '부업’(VUUP) 이란 모임도 만들었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미디어아트를 좋아하는 기획자 네 명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었는데, 젠틀몬스터의 이지혜 팀장,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진 학예사, 에트나라는 현대갤러리 NFT 스타트업의 전혜인 실장과 저 이렇게 넷이 속해있었고, 2022년 당시 모두 블록체인에 큰 관심이 있어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여성 미디어아티스트 커뮤니티를 연구하고 그것을 주제로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 네트워킹 파티도 열었고, 좋은 반응을 얻어 이를 매년 개최하는 이벤트로 하기로 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블록체인 기반 커뮤니티가 지닌 특성들을 오프라인 세상에 활용하고 접목할 수 있다면 그런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같은해에 창업지원을 받아 ‘미디어아트를 퍼블릭하게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가진 ‘퍼블(PUBLE)’을 공동창업했고, 스타트업씬 사람들과 네트워킹데이 등을 통해 만나게 되면서 스타트업 생리가 미술계에 적용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죠.
💬 잠깐만요. 이게 다 2022년에 부상으로 휴직하면서 하셨던 일이죠?
➡️ 네, 말하고 보니 또 바쁘게 산 것 같네요. 사실 같은 해에 틈틈이…IFA 의 디렉터인 베티나 코링텐베르크 Bettina Korintenberg과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서울대학교 김상훈 교수님을 도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예술경영연구포럼(KAMA)을 기획하는 데에 함께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2023년에 복직을 했죠.. 복직해서는 단축근무를 선택해서 육아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돌볼 시간을 여전히 확보했어요. 결국 지금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오면서, 휴직했을 때 여행도 다니고,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도 시작하면서 ‘결국 나는 플랫폼을 통해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 오게 된 거죠.
팀을 리딩하면서 저는 항상, 그리고 지금도 팀원들에게 사이드프로젝트를 적극 권해오고 있어요. 제가 했었던 모든 사이드프로젝트들이 나의 직장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한 집단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조직 밖에서 다른 활동도 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확장할 수 있어요.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예산까지 들여서 직원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요. 그런 경험을 근무 외 시간에 스스로 다른 곳에서 얻어오는 것은 회사로서도 큰 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서 회사에서 소화할 업무는 이슈 없이 해내는 게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요.
저는 이런 효과를 5~6인으로 조직된 팀을 이끌면서 몇 번이나 경험하고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을, 조직원이 아닌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나 리더들이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팀원들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동시에 개인이고 그들이 스스로를 브랜딩 할 수 있는 동력을 보장해 주어야 조직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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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 보면, 조직 생활을 성실하게 하되, 밖에서도 새로운 기회-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 만들어 가다 보니 여기까지 변화하고 오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제언 님의 이력을 들여다보았을 때 비교적 전통적인 미술관에서 일했는데, 어떻게 사고를 유연하게 열었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다 위와 같은 과정 덕분이었네요. 그럼, 당장 앞으로의 계획은요?
➡️ 박사에 들어가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공부를 좀 더 할 준비를 하고 있고요. 이를 위해 최근 학술지에 AI와 미디어아트에 관한 논문을 하나 발표했고 박사과정에서 계속하고 싶은 미디어아트와 젠더에 관한 연구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리고 2024년에는 앞서 말한 플랫폼을 실험할 생각이에요. 회사는 플랫폼으로만 존재하고, 직원들이 유닛으로 활동하는 회사로 상상하고 있어요. 예술을 다루는 사람들에겐 각자의 주제가 있을 거예요. 여성주의나 환경문제처럼요. 그래서 같은 주제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회사 안에서 유닛으로 활동하는 거죠. 작년에 창업한 ‘퍼블’이 그 모델이 될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모델의 회사를 재창업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마치 턱괴녀 같네요. 턱괴녀 역시 이 안에서 공통된 일을 하면서 각자의 리서치도 진행하고, 또 특정 주제가 확장되면 어디에 있는 누구든지 합류할 수 있거든요. 마치 밴드처럼요
➡️ 네, 맞아요. 내가 무엇을, 왜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이제 물리적 장소나 어떤 조직에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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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VUUP VU-UPdate 공동기획 2022 얼터사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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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40년 동안 할 일을 20년 만에 압축해서 한 느낌이에요. 그만큼 부지런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병행하고요. 번아웃이 왔던 적은 없으셨나요?
➡️ 번아웃은 따로 없었던 것 같아요. 팀 업무를 하다가 사이드프로젝트하면 오히려 환기되면서 일로부터 왔던 스트레스를 상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육아도 마찬가지 구요. 이 일에 지치면 다른 일에 집중했다가 그 일이 스트레스 받으면 또 다른 일을 소화하면서 잊어버리는 식으로요.
💬 제언님은 일에 대한 감각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또 얼마나 에너지가 들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아는 거죠.
➡️ 네, 번아웃을 관리하고 사이드프로젝트도 하면서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어떤일을 하려고 덤비는 것 이상으로 들어온 일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정말 중요한 거로 생각해요.
💬 많은 턱괴녀들이 너무 일만 챙기다가 삶의 다른 부분은 전혀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도 최근에는 많이 해요. 인생에는 일은 물론, 관계, 건강 등 다양한 면이 있는데 말이죠. 제언님께는 이에 대한 야무진 팁을 듣고 마무리하고 싶어요.
➡️ 여태까지 회사 생활, 사이드프로젝트까지 일에 관한 얘기를 잔뜩 했는데, 일 외에 다른 부분에도 정성을 쏟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의 삶은 일과 가정이 가장 주축일 텐데, 가정생활도 일처럼 노력하는 면이 필요해요. 집에서의 안정감과 휴식, 가족과의 유대와 가족의 지지가 없이 외부 활동에 집중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최근 본 오페이하이머 영화를 보면, 맨하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오펜하이머는 학교와 교회의 필요성을 제일 먼저 이야기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과학자들이 최고의 아웃풋을 낼 수 있다고요. 언젠가 랩퍼 빈지노씨의 인터뷰를 봤는데, 결혼 생활도 커리어처럼 가꾸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가족인데 왜 나를 이해 못 해줄까?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업무파트너를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서로 배려하고 중요한 미팅처럼 가정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는 거죠.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공감했어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도 저도 막상 정신없이 바쁠 때는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을 미루다가 아들에게 한 소리 듣지만요.
💬 그러려면 부지런하긴 해야겠네요.
➡️ 네, 그건 맞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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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들어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라는 경력 유형이 활발하게 논의 중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몸의 형태를 바꾸는 신 '프로테우스'에서 유래해, 변화무쌍하고 자유로운 커리어을 의미하는데요. 박제언 큐레이터님을 보며 곧바로 이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의 선택들로부터 프로티언 커리어가 하나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 같다는 평소의 생각에 확신이 들었거든요. #주체성 과 #모듈 이라는 키워드로 말이죠.
이제 우리들의 시간은 통용되는 정답이 없이 모듈화 되어 조립되고 돌아갑니다. 누구는 직업을 단순한 캐시카우(aka.속된 말로 돈줄)로 상정하고 사이드프로젝트로 자아실현을 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 여러개의 부업을 가지고 있어요. 중요한 건 각 모듈에서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인데, 턱괴녀는 이것이 굉장히 아티스트적인 태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파고 들고 스스로의 욕망을 파악하고 내 작품의 로드맵을 짤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어야 영리하게 커리어를 경영할 수 있는 시대가 된거죠.
여러분은 오늘 어떤 모듈들을 조립해 24시간을 채워놓았나요? 오늘 틈틈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턱을 한 번 괴어봐요!
[FYI.] 사이드프로젝트와 프로티언 커리어 개념이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곳이 바로 테크의 성지인 실리콘 밸리라는 것 아시나요? 가장 대표적인 아웃풋이 애플, 트위터, 인스타그램이랍니다.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각각 Atari, HP의 정규직으로 일하며 첫번째 애플 프로덕트를 만들었고,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는 팟캐스트 플랫폼 Odeo에서, 인스타그램 공동창업자 중 케빈 시스트롬은 Nextstop의 제품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고 해요. 아티스트적인 태도가 손꼽히게 상업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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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2길 19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 P 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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