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SC 디자이너 김소미 인터뷰 💌 2023년 4월 턱괴는레터 : 2년 차에 팀장이 된 디자이너의 현재와 미래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김소미 디자이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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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 우리는 인문학과 공감능력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변화가 필요한 것을 찾고, 바꾸기 위해 리서치하는 연구자들입니다.
🙋🏿 우리는 그 리서치 자료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사업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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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턱괴녀입니다.
2023년 4월 턱괴는레터에서 만난 사람은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김소미 디자이너예요. 2년 차에 어쩌다 팀장이 되어 11년 차가 된 지금, 온전한 리더로 성장한 그를 만나봅니다. 모든 질문에 밝게 웃으며 정성스레 답해주었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난 턱괴는레터 이자연 기자 인터뷰도 두 번씩 읽었다는 후기가 있던데, 이번에도 너-무 인사이트 넘치니까 제발 꼼꼼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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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녀 with 턱괴녀👥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김소미 디자이너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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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페미니스트 디자인 소셜 클럽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찾다가, 이윽고 어렵지 않게 발견한 이 조직, 단체, 아니 클럽. 페미니스트 디자인 소셜 클럽(FDSC)의 정체를 알게 되고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반가움을, 심지어는 약간의 소속감도 느꼈다. 디자인할 줄 몰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어떤 곳은 같다고 짐작해 버렸다. ‘여성 디자이너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가는’ FDSC의 김소미 디자이너를 만나고 그 짐작은 확신이 되었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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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마포구 출판문화진흥센터(Platform P)에서 김소미 디자이너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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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0.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기 전, 가벼운 질문이 하나 있어요. ‘디자인 FM’이라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턱괴녀가 직접 팟캐스트를 해보니까 지속가능성을 위해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김소미 디자이너님의 원동력이 뭔지도 궁금해요.
어느 날 신인아 디자이너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뭐에 홀린 것처럼 공지를 썼어요. 제가 공지를 썼는데, 아이디어 자체는 신인아 디자이너가 콘텐츠 기획으로써 처음 제안하셨죠. 팟캐스트를 할거고, 내용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FDSC 회원들과 함께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게 “생각이 있는 분은 내일 아침에 만납시다"라고 쓴 거예요. 금요일인가 토요일 밤이었는데 갑자기 8명이 댓글을 쭉 달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다음날에 종로의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만나고 보니까 신기하게도 역할이 별로 안 겹쳤고요. 어떤 사람은 음성 송출을 해본 적이 있고, 누구는 편집할 줄 알고, 또 어떤 사람은 라디오 작가가 꿈이었대요. 저랑 같이 mc 하시는 경희씨는 송은이 씨나 김숙 씨 같은 캐릭터가 되고 싶었다고 하고요. 그렇게 멤버가 모여서 팟캐스트 기획을 하게 되었어요. 디자인 업계에도 다양한 직군들이 있으니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개인으로 일하는 사람, 올드미디어, 디지털 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하고 얼레벌레 진행을 하게 됐죠.
근데 정말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게, 막상 하고 보니까 돈이 진짜 많이 들더라고요. 녹음 스튜디오 빌리고, 편집하고, 업로드하는 데까지 첫 시즌에 거의 몇백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FDSC 자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최소한이라고 보상을 가져가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이 힘들진 않았어요. 제작비가 FDSC 지출의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이 고민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팟캐스트가 FDSC의 ‘굉장히 비싼 홍보성 콘텐츠’ 역할(웃음)을 제대로 하더라고요. 더불어 수많은 여성 디자이너가 얼마나 다양한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지와 각자의 방식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저희가 돈을 들어서라도 꼭 하고 싶은 일이었고요. 저희끼리는 ‘기존의 질서를 무효화 한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기존의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해 왔던 질서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보다 반례를 계속 보여주는 거예요. 특히 반례의 좋은 점들을 노출하면서 사람들이 옛 질서에 대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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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입사 2년 차 때 ‘팀장’ 직책을 달았다고 들었어요.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존버의 원동력은요? 그것도 뭘 몰라서 버틴 것 같아요. 약간 디자인 업계의 특수성인 것도 같은데, 어떤 분은 기업가형 마인드라고 하고 저는 우스갯소리로 신자유주의의 망령이라고 하거든요(웃음). 내가 나의 능력으로 삶을 잘 일궈나가기만 하면 만사 해결될 거고, 어떠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내가 피해를 보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거죠. 나의 디자인적인 능력으로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저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은 채로 졸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상황이 절대 힘들지 않은 게 아닌데 그게 또 제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나의 능력이 아직 부족한가 봐' 하면서 그냥 달리기만 했던 거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6년 차 7년 차가 된 거죠. 나를 책임질 윗사람을 뽑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그냥 윗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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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그래도 중간에 일종의 해방이라고 할 법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시점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삼성 토크 콘서트의 일환이었던 '열정 레시피' 패키지 디자인을 모두 도맡아 했던 프로젝트였죠. 김소미 디자이너님의 첫 번째 퀀텀 점프는 어떻게 가능했나요? 제가 처음부터 맡았던 건 아니고, 원래 있던 실장님이 나가시면서 제가 넘겨받은 프로젝트였어요. 마무리를 한 거죠. 사실 지금도 삼성급의 클라이언트와 일할 기회는 많지 않아요. 엄청 깐깐한 클라이언트고, 그 깐깐함에 드는 비용은 돈으로 다 돌봐 주는(가제본을 40번 요구하면 40번 다 돈을 주는 그런 곳이죠) 곳이어서 일은 매우 힘들 법한 프로젝트였는데, 당시엔 나름 맨땅에 헤딩하면서 알아가는 재밌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엄청 바보 같은 말 많이 했어요. 작은 에피소드들 사이사이 거래처에서 저에게 짜증을 내곤 했던 기억도 있고, 이쪽 벽에 머리 박고 저쪽 벽에 머리 박고 했죠. 그럼에도 그것보다 그냥 ‘끝났네’ ‘와 끝났다' 하고 신이나 하는 상태였던 것 같고요.
오히려 지금은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졌죠. 이를테면, 그때 당시에 했던 프로세스 그대로 일을 진행하면 큰일이 난다는 걸 이제 알고 있는 거죠(웃음). 그래서 오히려 지금 더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것도 많아지고, 겁내는 것도 그때보다 많은 것 같아요. 크리에이티브 면에서 고민되는 거야 늘 있는 일이고, 그게 연차가 쌓인다고 해결되는 것 같지도 않고요. 다만 이제 10년 차가 넘은 디자이너로서 좀 챌린징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제가 중간 관리자로서 팀원분들을 회사의 목표와 적합하게 정렬해 가면서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미션이 달라진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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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FDSC 창립과 관련된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초반에 이야기 나누었던 ‘디자인 FM’처럼 FDSC의 시작도 인터넷에 올라온 제안 한 줄이었다고요. 그런데 이때는 김소미 디자이너님께서 제안에 덥석 응한 쪽이었고요. 그렇게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마음은, 그 이전에 쌓여있던 히스토리들이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커리어든 관찰하신 결과이든 간에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는 것 같아요. 우선, 2016년에 ‘WOO’라고 부르는 모임이 있었어요. 여성 디자이너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하는 모임이었죠. 그 모임에서 토크 행사 등도 많이 개최했는데, 당시에 이런 활동들이 사람에게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준다고 느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밀려오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쁘고, 사실 일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순간보다는 지치게 만드는 순간이 굉장히 많잖아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소진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모임이 있음으로써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감각이 있고, 사회를 우리가 조금씩 바꿀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고, 이런 지점들이 힘이 되게 많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이런 모임이 사라지니까 적적했던 거죠(*‘WOO'는 본 모임 자체가 또 다른 업계 내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활동 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인아 디자이너가 트윗(FDSC의 시초가 된 번개 모임 제안)을 올린 걸 보게 됐어요. 사실 처음엔 조금 망설이다가 “근데 인아님, 아까 트위터에 올리신 건 인원이 다 마감됐나요?”라고 쓱 물어봤는데 답변이 이렇게 오더라고요. “이제 두 명이 됐네(웃음)” 하여튼 ‘WOO'라는 경험을 이전에 했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여성 디자이너들이 같이 모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거고, 엄청나게 큰 고민은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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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그러면 일명 ‘신자유주의 망령'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 계기는 FDSC 이전에 ‘WOO'였나요? 그건 아니에요. 그 당시만 해도 약간 혼란기였던 것 같아요. 회사 안에서의 저와 밖에서의 제가 지금처럼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어요. 회사 안에서는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면을 유지하면서도 굉장히 피상적인 페미니즘 정도를 생각했거든요. ‘여아의 의상에 핑크색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 있잖아요.
사실 FDSC를 시작할 때도 구조적인 측면에서 디자인 업계를 바라보는 고민은 잘 없었는데, 저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동료들을 보고 점차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 디자인 업계에서의 페미니즘이겠구나 하고 나중에 생각하게 됐죠. 한 2~3년 걸렸어요. 지금 FDSC 안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데, 그게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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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디자인이란 작업 안에서 예술과 생업의 밸런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디자인을 ‘노동'이라고 분명히 인식하시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예술가로서의 디자이너를 굉장히 강조하는 학풍의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졸업하면 모름지기 궁극적으로 자기 이름으로 된 예술적 색채를 가진 스튜디오를 개업해야 좋은 디자이너라고 인식하면서 자랐어요. 기업에 들어간다는 건 영혼이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굉장히 오래 했고, 이 인식이 아까 말씀드렸던 신자유주의 매직과 결합해서 내 처우를 신경 쓰기보다 예술을 해야 한다는 욕심도 오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진짜 열심히 해도 그런 기회가 -예술가로서의 나를 뽐내는 기회가- 오지 않는 거예요. 예술가로서의 성공은 성실함이나 심지어 학벌과도 상관없는 것이라는 걸 점점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가 추구했던 이상이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은, 그만큼 모두에게 권장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된 거죠. 사실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이라는 자기 능력을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하는 노동일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예술성을 일부 가지고 있을 수야 있지만 그게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은 거예요. 이 점을 사람들이 많이 알아야 저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단순 작업이라고 일컬어지는 포토샵 작업 등을 수행하는 사람조차도 -그 사람이 밟은 교육과정과도 무관하게- 디자이너가 맞기 때문에 그 부분을 놓아버리고 가면 안 되는데 저희가 자꾸 잊어버리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라도 디자인 업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디자인은 일단 노동이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나중에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관점이 참 와닿았던 기획이 있었어요. FDSC에서 얼마 전 ‘견적서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죠? wrm(whatreallymatters)에서 FDSC쪽에 제안을 주셔서 성사된 거예요. wrm 상담소 프로그램에서 법률이나 견적서 계약 관련 질문이 굉장히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아무리 연차가 많고 경험이 많아도 법적인 문제는 답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이쪽으로 특화된 경력을 갖고 계신 변호사님을 모시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고, 실제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떤 지점이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어떤 문제가 ‘얘기해 볼 수 있는' 주제가 된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내가 너무 예민한' 문제가 아니라요. 그래서 이렇게 건조하지만 쾌적하게 어떤 정보에 대해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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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아까 벌써 11년 차라고 하셨는데, 처음 업계에서 진입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업계의 스타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매우 소수의 디자이너들만 '잘하는 디자이너'로 꼽혔거든요. 타이포그래피는 이 사람들 몇 명, 그래픽, 포스터 디자인은 누구누구.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 꼽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이젠 각자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는 느낌이에요. 이 안에 분명히 존재하던 어떤 최고가 사라진 느낌. 근데 전 이 상황이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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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번외 질문) 오늘날 많은 여성이 커리어 고민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삶의 다른 부분은 거의 신경 쓰지 못하기도 해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재테크’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너무 나의 진로, 일의 태도, 커리어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까 돈에 대한 것은 같이 생각을 못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커리어와 재테크는 따라가는 것인지(커리어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돈도 많아지는 건지), 아니면 확실히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있는 부분인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솔직히 궁금합니다. 30대 여성의 현실적인 삶이 궁금해요!
재테크를 시작한 건 정말 얼마 안 됐고요. 투자한다거나 그런 것이요. 그전엔 저축(적금)만 계속했어요. 물론 절약, 검소한 생활을 하려고는 했고요. 삶이 절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30대 초반에 집을 샀어요. 우선 절약하는 습관을 들여서 정말 돈 열심히 모았고요. (은행에 갚아야 할 것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그렇게 어쨌든 집을 구하고 나니까 정서적 안정감이 확실히 있어요. 빚이지만, 갚으면 집은 내 손에 남는 거니까요. 전셋값 오를 걱정도 그만 해도 되고요.
커리어 정말 중요하죠. 다만, 살다 보면, 그리고 일하다 보면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꼭 성공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지는 않기 때문에 나를 지키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건 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커리어와 같이 고민해야 할 항목이라고 생각해요. 재테크를 ‘스스로를 돌보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하면, 분명히 필요한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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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엔 FDSC 창립이 마땅히 계획적이었을 것이라 짐작했고, 긴밀하고 촘촘한 작당모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떠한 비범한 대단함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웬걸 그의 대소사가 넘쳐나는 커리어는 우리의 것과 너무 닮아있었고, 공존과 공생을 위한 커뮤니티는 알고보니 몇몇 사람의 약간의 충동이 모여 탄생했다고 한다. 일상에서 턱을 괴는 사람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무언가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주변의 턱괴녀를 깨워내는지! 이 순간에도 의도치 않게 서로를 구원하고 세상을 바꾸는 턱괴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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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녀 소식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김소미 디자이너 인터뷰 잘 읽었나요? 생각해 보면 2년 차에 '팀장'이 된다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거예요. 정말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그 시기를 잘 보내고 정말 해낼 수 있는 리더가 된 모습이 너무 멋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버텨낸 이야기도 듣고, 직업과 일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어요. 턱괴녀는 앞으로도 우리 주변의 턱괴는여자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5월에는 어떤 턱괴녀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주말에는 턱괴녀 유튜브에 인터뷰 쿠키 영상도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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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2길 19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 P 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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