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근데, 별명이 왜 ‘양천구 불주먹’이에요?
그냥 제가 먼저 친구들에게 자주 하던 얘기에요. ‘나 양천구 불주먹이야.’라면서. 이건 뭐랄까요, ‘내가 되고 싶은 것’ 그런 거예요. 일종의 제가 가진 위트같은 거고요. 별 뜻 없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별명은 아니고, ‘난 양천구 불주먹도 될 수 있어!’ 말하고 싶은 거죠.
Q2. <어제 그거 봤어?>라는 책의 시작은 브런치에 쓴 ‘하이킥 시리즈에는 책상이 없다‘라는 글이라고 들었습니다.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충격 주의!’라는 제목으로 회자되면서 출판까지 하게 되었다고요. 처음에 이렇게 온라인에 글을 쓰게 된 계기, 혹은 그 시작이 궁금해요.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거의 방치 수준 아니었나 생각이 들만큼 홀로 오래 있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정말 많이 봤죠. 예전엔 종이 신문에 티비 편성표가 나왔는데, 그걸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2010년 즈음이었나, 텔레비전, 드라마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텔레비전과 드라마가 그냥 예능적으로만, 재미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된거죠.
2015년에 첫 취업을 했는데,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더라고요. ‘과연 어떤 에디터가 될 거냐?’를 정해야 하는 시작이었어요. 푸드, 미술, 자동차 등, 그중에서도 저는 티비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어릴 적부터 쌓아온 나의 문화적 자산이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머릿 속 생각을 문장화하다가 좀 더 긴 글로 블로그에 올리고, 브런치에서는 더 각잡고 연재하게 되었어요. 전 진심인데 취미처럼 보였겠지만요. 그래도 한우물 파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2019년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핀치에서도 연재하자고 연락이 오곤 했지만, 여전히 잔잔한 편이었죠. 그러다 하이킥 글이 2019년 말 즈음 터진거예요. 그리고 출판까지 하게 된 거죠.
자연님이 어떤 이들과, 어떻게, 시선이나 의견을 공유하고 다듬고 발전시키는지 궁금해요.
일종의 커뮤니티 같은 존재도 있나요?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친구 중에 ‘지수’(『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저자)라고 있어요. 또, 영화 CG 작업을을 하는 ‘신형’이란 친구가 있고요.
지수와는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주로 나누고, 신형과는 작품을 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여럿이는 아니어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관계가 있는 것 만으로 저에게는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제 생각을 축소시켜 생각하지 않았달까요. 선배가 없어서 안개속을 걷는 듯이 막막한 느낌일 때는, 선배를 찾아서 직접 연락했어요.
첫 번째로 황효진님(『아무튼 잡지』,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은 미디어 비평 쪽에서 꾸준히 글을 쓰던 분이에요. 일면식 정도만 있는 상태에서 제가 먼저 연락드렸는데, 만나줬어요.
두 번째는 최지은 작가님(『괜찮지 않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이에요.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분명한데, 나만 가질 수 있는 관점이 무엇일지 구체화시키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어요.
음 이들이 날 도와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그 방법을 찾아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연락할 수 있었죠.
맞아요, 언니들은 원래 동생들 잘 도와주니까요. 『어제 그거 봤어?』에서도 언니들이 동생을 예뻐하는 미디어의 장면들에 대한 글이 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게 연출이 아니라는 걸 저도 느껴요. 왜냐하면 나의 삶에서 그런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니까요.
Q3. 현재는 영화 잡지사 ‘씨네21’에서 글을 쓰고 계시다고요. 이 일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개인적인 만족도라든지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글을 쓰시는지 궁금해요.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나의 달라진 시선 또는 태도가 있다면요?
처음 ‘씨네21’에 지원한 포지션은 객원 기자였어요. job opening 자체가 그것뿐이었고요. 1차 면접을 봤는데, 2차 면접 보기 전에 연락이 와서 아예 객원 말고 경력 기자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저는 이게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없던 길을 만든 느낌이랄까요? 공개 공고는 아니었지만, 마침 인하우스 경력 기자가 필요했고, 자연님의 그간 쌓아온 글들로, 생각들로 그 자리를 스스로에게 선물한 느낌이에요.
저도 정말 그게 여전히 신기해요. 사실 그전에 ‘씨네21’에 두 번 지원했다가 떨어졌었거든요. 그래서 ‘아 나는 여기서 일 못하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일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도 성실한 부분이 있었고,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글 쓰는 방식은 많이 변했죠. 개인으로서는 무조건 여성주의 관점으로 썼었어요. 그러니까 여성주의가 굉장히 중요한 주축이었죠. 그러다 입사하고 나서는 개인으로 쓰는 글과 조직원으로 쓰는 글이 어느 정도 분리되었어요. 회사 안에서는 오로지 그것(여성주의)만이 방향이 될 수는 없거든요.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거부 반응있는 집단은 아니에요. 그래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해서 공부하고 있고,
무엇보다 전 항상 시청자의 입장으로 봤는데, 제작자의 입장도 고려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정말 큰 변화에요. 프로덕션과의 관계 이런 걸 알아가는 것도 나름의 재미고요. 참, 비평말고 산업에 대한 이야기에도 내가 재미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문화의 흐름. 왜 요즘 일본 애니 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휩쓸고, 한국 기업형 영화에 등을 돌리는지 분석해보는 이야기들이요.
Q4. 우리가 말하는 턱괴기는 자세 그 이상이에요. 우리가 생각할 때 자연스레 턱을 괴게 되잖아요. 이런 포즈가 미술의 역사에서 반복해서 사용되고, 굳어져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알레고리가 되었어요. 미술사를 가로지르며 턱괴는 사람에 대한 도상을 찾아봤는데 ‘여성‘은 거의 없더군요. 역사적으로 ‘생각‘을 하는 주체는 남성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팀이름을 ‘턱괴는여자들’이라고 지은 것도 있고요.그런데 우리에게 턱괴기는 생각하기에서 더 나아가요. 당연하다고 생각되거나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 의문을 갖고 파헤쳐보고 대안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것까지가 저희에겐 턱괴는 행위거든요. 턱을 괴고 골몰하다 방법을 생각났으면 실천하러 가기 위해 박차고 일어나는 거죠. 그렇다면 자연님에게 턱괴기는 어떻게 다가오는지요? 요즘 턱괴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요?
턱괴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게 ‘턱괴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이킥 여자들에겐 책상이 없다>라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계기도 결국 저로부터 시작되었고요. 화장대에 앉으면 불편해요. 무릎 끼리 계속 부딪히거든요. 거기 앉아서 무언가에 오래 집중할 수가 없어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근데 왜 저기서 하나? 분명 무릎이 부딪힐텐데.’ 나를 본 것이죠. 미디어에 비친 어떤 모습을 보면서 나를 대입해볼 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요즘 SNL에 나오는 MZ 오피스 속 여성 이미지를 나의 세계에 대입해봤어요. 정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저와 우리가 겪어온 공동체의식은 전혀 드러나지 않더군요. 아무리 개그라지만, 너무 1차원적이고 원초적인 감정만 보여줘요. 나를 대입해보니 나와 내 주위와 내 조직이 그렇지 않은데요.
한편, 멋진 여자도 마찬가지에요. 드라마에서 정말 멋진 여자가 나와도 ‘내 주변에 전혀 없는데? 뭔가 너무 낯선데?’ 라고 한다면 그건 현실에서 결핍된 거거든요. 그럼 또 거기서 그렇게 멋진 여성은 어떤 이유로 왜 결핍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한겨레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관찰기를 연재했어요. 여러 산업에서 여성 커뮤니티의 밈을 흥미롭게 마케팅에 활용하죠. 그러면서도 그걸 또 불순한 집단으로 치부해버려요. 여기서(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발생하는 밈은 마음껏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그걸 폄하하기도 하는 이중적 태도는 왜 일어날까?에 대해 턱을 괴고 있어요. 요즘 저는 그 안(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을 ‘생동하는 문화’로 바라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Q5. 우린 분명 일이 소중한 사람들이죠. 일과 일상을 어떻게 분리하는지, 혹은 분리하지 않는지, 어떤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또, 턱괴는 여성으로 살며 글을 써내는 데엔 분명히 어려움이 있을텐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평정심을 유지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는지도 궁금해요.
분리하고 싶은데, 분리하지 못했어요. 쉴 때 콘텐츠를 보거든요. 근데 이건 제게 결국 또 일이잖아요. 아니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요. 근데 이것도 저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에 관심이 있으니까 결국 또 일이에요. 이렇게 계속 ON 형태입니다. 다행히 너무 피곤하진 않은데, 이제 분리하고 싶긴 해요. 일단 공간적 분리도 필요할 거고요. 디지털 디톡스하면서 자연 속에서 지내보고 싶어요. 한정된 체력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계속 자책하기도 하니까요. 또 아시죠? 자책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누수.
요즘엔 돈 버는 일을 가장 1순위를 두고요. 문제는 당장 돈이 되진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그게 미뤄질 때 거기서 오는 고통을 감당하는 게 어려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