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인터뷰를 시작하며 16년간의 기자 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스포츠 기자’라는 필드도 마운드처럼 부인할 수 없이 남성 중심적인 곳이잖아요. 더군다나 그곳에 아주 오래전에 진입하셨고요. 처음 입사할 당시에 여성 스포츠 기자는 어느 정도 있었나요?
A. 제가 다닌 E사는 그래도 남녀 비율이 타사보다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어요. 실기 등 능력 평가 위주의 선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입사한 당시엔 이미 우리 부서에 3명의 여성 기자분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전체적인 비율을 보자면 여성이 3, 남성이 7 정도. 반면에, 타 방송사에는 여성 스포츠 기자가 아예 없었었어요. 웬만한 스포츠 일간지들과 방송사들을 포함해 스포츠 바닥에서는 여성 기자 찾기가 어려웠죠. 제가 입사하고 나서 한 2011년에서 2012년 그즈음 이후로, 그나마 여성 기자들을 현장에서 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11년의 어떤 일을 계기로 그런 변화가 시작된 건가요?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는데 아마 사회・문화적인 영향도 있었겠죠. 왜냐하면 여성의 직업 참가율이라고 해야하나요? 일 하는 여성들의 수가 그 즈음 늘었고, 그 때 여성 운동 선수들을 주목하는 현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포츠 쪽에서도 더불어 여자라고 왜 (스포츠 기자를) 못하냐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고요.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함께한 흐름이었죠. 그래서 여성 기자들이 스포츠 쪽에 지원하지 않던 경향이 좀 전환되었어요.
한편, 축구의 매력에 빠져 스포츠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다고요. 그리고 현재 인기 종목들의 취재를 담당하고 계세요. 스포츠 기자가 된 후에도 이른바 '메이저 종목’을 맡기까지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네. 제가 2006년 말에 입사해서 2007년에 본격적으로 스포츠 파트에 들어왔는데요. 그 땐 취재현장에 여자가 있으면 감독도, 선수도 다들 되게 신기해했어요. 기자들조차 기자인 저한테 질문하기도 하고요. 기자회견 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튀고 시선을 받을 정도로 여성 스포츠 기자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죠.
더군다나 제가 입사했을 때는 이른바 메이저 종목이라고 하는 축구, 야구에서는 여성 기자가 “저 하고 싶어요!”라고 손을 들어도, 웬만큼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잘 시켜주지 않았었어요. 물론 입사 1년차 때는 여러 종목을 다 경험해보라는 취지로 축구도 시켜주고 야구도 시켜주고 하지만, 한 2-3년 차 때부터는 하고 싶다고 해서 무턱대고 맡겨주지 않거든요. 그건 당연한거지만, 일종의 은근한 시험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여자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 1.5배는 보여줘야 “생각보다 잘하네? 이 종목 잘 맞나보다. 한 번 해봐.”, “취재력이 좋구나. 잘해봐.” 하고 보내주셨죠.
같은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더 엄격하게 능력 증명을 해야했던 거라고 느껴집니다.
네. 전혀 생각을 안 해봤던 지점이었어요. 저는 워낙에 스포츠를 좋아해요. 제가 94년도 미국 월드컵을 보고 자란 월드컵 키즈거든요. 스포츠 기자 아니면 ‘기자'라는 직업은 생각도 안 해봤을거예요. ‘이렇게 좋아하고 재밌는 스포츠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다. 그런 기회가 많은 직업이 뭐지?’ 했을 때 생각난게 스포츠 기자였어요. 저는 그냥 스포츠를 좋아하는 열의만 있으면 남녀에 관계 없이 내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어서 좀 당황했죠.
그래서 입사 후에 오히려 여성 스포츠는 외면했던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내가 여자라고 보여지는 순간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여자 선수들 경기에 대해서도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관심을 가질만 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기사화 해야되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자라는 생각을 버리고자 하는 게 강했어요. 그만큼 3~4년차 때까지 외부활동을 적극적으로 많이 했고요. 취재원들 만날 때도 끝까지 남아있고, 나를 먼저 찾게끔 만들겠다 했었죠. 그렇게 열심히 해서 제가 원하는 종목의 취재를 하게 된거예요. 그러고 나니 이제야 저를 경쟁 상대라고 생각한건지 견제가 시작되더라고요. 저는 퇴근 후에도 취재원들 만나러 다니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그냥 축구가 너무 좋아서 축구 보러 다녔어요. 동료들 연애하고 결혼하는 동안 일에 몰두했고요. 그런데 “네가 여자니까 취재원들이 더 잘 만나주는거 아니야?”, “여자니까 너한테 한 마디 더 잘해주는거야”, “네가 얻는 소스라는게 네가 발빠르게 움직여서가 아니라, 네가 ‘감독님~ 알려주세요’하면 누가 안 알려주겠니” 라고 폄하를 하더라고요. 초반에는 ‘여자가 얼마나 하겠어? 스포츠를 알면 얼마나 알겠어?'라고 생각한건지 아예 경쟁 상대에서 제외시켰다가, 어느정도 실력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니까 이제야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견제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성별을 구분하기 시작했고요. “네가 ‘여’기자라서 잘해주는거야." 그렇지만 나한테 일을 시킬때는 “여자니까 힘들지? 보건 휴가 부담없이 내”라고 하지 않거든요.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일해야지 뭐가 대단하다고 이러면서 일도 야근도 똑같이 줬는데, 제가 얻어온 결과물에 대해서는 "네가 여자니까 잘해줬겠지”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갑자기 기준이 바뀐 것 같네요.
*위 답변은 소설 『불펜의 시간』에서도 등장하는 장면이다. 우수한 성과를 내는 여성 스포츠 기자(기현)에게 남성 동료들은 기현의 숨겨진 노력과 마주한 장애물을 보기 이전에 ‘여성’이기 때문에 취재에 유리하며 그것이 곧 좋은 성과를 낸 가장 큰(어쩌면 유일한) 이유라고 단정짓는다.
네. 그 기준이 오락가락 하더라고요. 왜 여자는 남자들보다 1.5배의 노력과 실력을 보여줘야, 그제서야 그들과 동등하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처음엔 몰랐어요. 한 3-4년때 까지는 그냥 선배들이 취재원 만날 때도 데리고 가 주고, 여기저기 현장 나가라고 야근도 시키고 하니까 저는 막 신나서 좋아했죠. ‘선배들이 나한테 되게 잘해준다. 나에게 모든 기회를 다 열어주나 보다’ 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열심히 해야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기자님께서 걸어오신 길과 겪어오신 경험 자체가 굉장히 여성 스포츠 판의 현실과 닮아 있잖아요. 서로 닿아있는 지점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여자 야구도 보면, 아예 경쟁 상대로 보지도 않을 때는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야구 소녀>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만 봐도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시선이 매서워져요. 영화 주인공 설정이 130km/h의 구속을 던진다는 것인데, 댓글에서 여자를 경쟁 상대로 보기 시작 하더라구요. 물론 그런 여론이 전체는 아니라고 생각은 해요.
제가 방송에 나와서 리포트를 하는 것도 처음엔 ‘새롭네’라고 봐주던 게, 1~2번이 아니라 1년, 2년 계속 되니까 시선이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뭐 하나 실수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기자들과 똑같은 표현을 써도 ‘뭣도 모르면서 지껄이네’하는 악성댓글이 많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저 항의 메일도 엄청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그 메일의 내용이 거의 쌍욕이에요 . 그러니까 팬으로서 관심 있게 지켜본 자기가 더 잘 안다, 전문직으로 삼고 있는 나보다 본인이 더 안다고 생각하는거예요. “(여자인) 너는 몰라”라는 태도. 남자 기자와 똑같은 워딩을 써도 “너 왜 그렇게 얘기해?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라고 해요. 그런 표현이 굉장히 많았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게 지껄인다.”
“남자와 동등하게 누리려면 남자보다 낫다고 증명되는 강점이 마땅히 있어야 해”라는 관점을 느껴요. 기자님께서 남자 기자들에 비해 1.5배의 성과를 증명해야 했던 것처럼요. 이것은 평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안에서는 본질에서 벗어나는 논점이라 생각해요. 또 여자가 남자만큼 스포츠 활동을 누릴 명분은 ‘우위'에서만 오지 않잖아요.
*스포츠가 더이상 ‘승리’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턱괴녀에겐 중요한 포인트이다.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이 운동이 생업이기 때문에 잘하고 이겨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도전, 열정, 끈기, 반전-들이 세상에 되돌려주는 에너지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 스포츠인들로부터 이런 긍정 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네. 바로 그거예요. 스포츠가 예전엔 ‘엘리트 주의’, ‘성적 중심 주의’였다보니까 여자도 남자만큼 하는지를 봤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여성 스포츠인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의 스포츠 참가에 대해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죠. “이기고 지는게 스포츠의 다가 아니야” 라는 관점이 늘어났고요. 저는 그 결정적인 계기가 이번 도쿄 올림픽이었던 것 같아요.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승패의 결과 보다는 과정에 집중해서 경기와 스포츠를 보는거죠. 그 과정에 이 여자 선수가, 이 남자 선수가 얼마나 공을 들이는 지에 대해서 평가를 해주는 인식이 갖춰지는 걸 보는 거죠.
또, 저희가 여자 야구를 여자 축구랑 많이 비교하거든요. 왜냐하면 여자 축구 역시 과거엔 비인기 종목인데다 불모지였으니까요. 지금의 여자 야구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이렇게 지원을 받고 발전하는 데에는, 결국 제도권 내에 있는 한 사람의 인사이트가 작용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축구협회 회장님께서 굉장히 옛날부터 “이제는 유소녀를 키워야된다” 는 결단을 내리고 2003년부터인가 전폭적인 투자를 하셨대요.
아마 이회택 부회장일거예요. 여자 축구가 지원을 받기 시작한 데에는 국가 차원의 큰그림도 작용했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2002 한일 월드컵 이전에는 남자 축구 국가대표에도 그렇게까지 열광하지는 않았거든요? 2002년을 기점으로 ‘이 흐름을 타고 축구의 영역을 확장시켜보자'해서 2003년부터 정부기관인 문체부와 대한축구협회가 뜻을 같이 했어요. 남자 축구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건 이미 형성된 시장이니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보자- 라는 의도로 여자 축구도 활성화시키기 시작한거죠. 때문에 문체부에서도 거액의 돈을 투자했고 학교의 여자 축구팀 창단을 장려하면서 풀뿌리 저변 확대를 의도적으로 한 게 있었어요.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서 ‘아 축구로도 돈이 되는구나. 남자로 이렇게 된다면 여자로도 한 번 해보자’ 그런 분위기가 된거죠. 그래서 여자 축구의 경우는 어떤 한 사람의 결정이었다기 보다는 사회적인 니즈와 대한축구협회의 의지도 동시에 적절하게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게 저변확대 시작은 잘 했는데, 사실 대한축구협회가 관리 감독에 있어서는 좀 소흘했기 때문에 그 후에 여자 리그가 출범한 건 2009년에 이르러서였어요. 그러니까 이게 어떤 한 종목을 활성화 시키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것들이 한번에 쫙 움직여야 하는 것 같고, 지속적으로 최소한 10년 정도는 팔로우업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출범한 K리그도 새로운 어려움이 또 있는게, 출범은 했지만 지금 점점 운동을 하는 여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거든요. 예전에 비해서요. 축구에 흥미를 가지고 “나 축구선수 해볼래요!” 했던 애들이 지금은 없어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건 모든 종목에 걸쳐있는 문제인데, 지도자, 감독, 코치가 다 남자예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다 남자구요. 그러니까 당장 지도자들과의 성적인 문제, 그런 것들이 계속 사건화되고 또 진중하게 다뤄지지 않으니까 부모들이 안 시키려고 한단 말이죠. 아이들도 하기 싫어하고요. 이렇게 플레이어가 여자이더라도 이를 둘러싼 모든 분야엔 남자들 뿐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점들이 계속 생겨나요. 그래서 축구 하는 애들이 줄어들고요. WBK리그도 선수들이 꾸준히 영입이 되어야 하잖아요. 새로운 선수들이 없으니까 은퇴를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경우도 생겨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빠지게 되면 정원수가 부족해서 팀이 해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아직까지 이런 선순환이 잘 이뤄지지는 않아요.
궁극적으로 여자 선수들이 은퇴 후에 지도자로 다시 진입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사실 여성 플레이어의 강점과 전략은 여자 선수가 더 잘 알기도 할거고요. 축구도 아직까지 그 지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거네요.
그 문제도 그래요. 체육계에서 지도자와 선수간의 성적인 문제가 꾸준히 수면위로 드러나는 이유는, 결국 여성 지도자, 정책 관리자가 없기 때문이에요. 스포츠에서 여성은 2000년대 초반에야 선수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아직 그 이상은 못 갔죠. 지도자, 감독, 심지어 심판도 다 남자에요. 그 진입장벽이 아직은 공고한 것 같아요.
그래서 도쿄올림픽의 경우에도 참가 선수 성비에 있어서는 ‘성평등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땄지만, 경기 진행에 필요한 구성원을 모두 포괄하면 여전히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점이 지적되더라고요. 반쪽의 성공이고, 앞으로 갈 길이 먼 거죠.
앞으로가 더 중요한거죠. 그런 표면적인 슬로건으로만 있어보이면 그만인 것으로 여겨지면 안되고요. 스포츠에서 ‘선수' 외의 모든 분야에서도 여성 참여율이 꾸준히 높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시류를 빨리 읽어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우, <마녀들> <골 때리는 그녀들> <노는 언니> 등 여성 스포츠 종목을 앞세운 포맷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에요. 비록 제작자와 스포츠인의 동상이몽이 되더라도, 어쨌든 대중에게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각화’ 작업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스포츠 기사의 경우는 아직도 시대의 흐름에 예민하지 못한 헤드라인을 종종 접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부서 내부 혹은 회사 차원에서는 변화의 목소리가 좀 있는 편인가요?
없어요. 없는 것 같아요. 언론의 이런 특성은 생태계 특성이고, 관성이고 또 관례인 것 같아요. 기사를 낼지 말지 결정하는 분들은 그대로이거든요. 때문에 어차피 위로 가면 다 잘리기도 하고, 여성의 성과에 대해서는 '뭐 그런 걸 기사까지 내'라는 인식이 여전히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여자 국가대표 발대식에 취재하러 직접 가겠다고 하면 카메라만 보내라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남자팀 행사에는 아침에 가서 저녁까지 있으라고 하고요. 미디어는 관성이 높아요. 업데이트가 느린게 문제점이 되지요.
그렇다면 응원하는 것 외에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언론이 혹할만한 이벤트를 만드는건 결국 대중이에요. 청원을 하든 SNS 를 활용하든, 계속 알리고 소문내는 역할을 해야해요. 유의미한 '숫자'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미디어가 욕심내는 헤드라인은 결국 ‘ㅇㅇㅇㅇ 경기 관중, 역대 최다 ㅇㅇㅇ명’, ‘ㅇㅇㅇ 스포츠 애호가 유튜버 모금 행사 통해 몇천만원 후원’ 이런 식이니까요.
‘이거 우리 회사 얘긴데?’라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이 우리 구독자 중에서는 별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인터뷰를 읽어내리시며 느끼셨을테지만, 왜 인터뷰 철회 요청을 보내주셨는지도 이해 되지 않나요?
남성 중심의 판에서 여성 직업인으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동일한 기회를 두고도 더 많은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한 번 더 턱을 괴어보면, 더 어려운 점은 죽을만큼 노력해서 그렇게 '더' 잘하게 되더라도, 노력이 폄하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가 아닐까요? A기자님이 인터뷰에서 밝힌 “네가 얻는 소스라는게 네가 발빠르게 움직여서가 아니라, 네가 감독님~ 알려주세요. 하면 누가 안 알려주겠니” 이런 얘기들. 결국 보통의 직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성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고, 이것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운드, 그라운드, 스포츠 판 외에도 여성 또는 특정한 대상이 반드시 평균을 초월한 고군분투를 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또 있겠죠. 아니, 그 운동장조차 없을 수도 있겠죠. 이 인터뷰를 읽은 모든 턱괴녀가 그곳을 찾아 내길, 아주 조금은 수평으로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그의 대꾸에 기현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자기도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었는데 여자를 받아주는 중학교 야구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나 질서가 있을 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야구를 하는 여자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조차 없다고 말했다. 농구나 배구는 여자 리그가 있잖아요 야구는 여자 리그가 없어요. 남자만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죠. 권혁오 선수가 그런 식으로라도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운동장은 있었기 때문이에요.”
- 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에서